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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종식 전, 복음의 본질 ‘갱신’ 발동 걸렸으면”

기사승인 2020.12.30  14: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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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초체력·자정능력 약한 한국교회-자기 성찰 시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았으면”

성탄절 대담 = 지형은목사(성락성결교회 담임/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

출처 : 들소리신문(http://www.deulsoritimes.co.kr)

올 한 해는 코로나19 대처로 온 국민들이 힘겹게 보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 이렇게 오랫동안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인들이 고통 받은 예는 없어 보입니다. 안타까운 인명피해와 생계를 위협하는 경제활동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맞는 우리 국민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먼저 한 말씀 해주십시오.

- 그렇습니다. 이런 일은 현대인들이 경험한 것으로는 초유의 일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1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전염병으로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즘 저는 창세기 13장 14절 말씀 끌어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인데, 여기서 제일 중요한 문장 구성요소를 보면 ‘눈을 들어 바라보라’입니다. 이 시대인들이 이 표현에 담긴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그 의미를 삶의 자세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는 시야가 좁아져 판단시야가 확 줄어드는 게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이럴 때 해결하는 메커니즘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늘을 한번 쳐다보며 하늘을 본 지 참 오래됐구나, 하면서 땅에 살고 있지만 영원한 가치가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바라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 교회 신자 중에서도 생업 때문에 힘든 이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압니다. 어떻게 위로하십니까.

- 우리교회도 직격탄을 받는 사우나, 예식업종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신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생각하면 어휴, 굉장히 마음이 아프고, 안쓰럽습니다. 그런 이들 위해 먼저 기도하게 되고, 예배 때 만나게 되면 각별하게 눈인사를 나누면서, “장로님, 힘내세요”, “집사님 믿습니다” 하며 힘을 잃지 않고 이겨나가시길 기도하는 마음 가득 담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시대를 이렇게 실감나게 경험해 본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예배는 물론이고 성도간의 대면 식사나 성경공부, 친교 등을 거의 할 수 없는데요. 이로인해 앞으로 코로나가 종식돼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신앙, 예배의 필요성도 약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 먼저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 자체를 먼저 정확히 보는 게 필요합니다. 이런 현상 중 두드러진 것은 아이티(인터넷) 기술을 기반으로 한 고도의 정보화, 고도의 초연결성 등 4차 혁명이 코로나로 인해 가속화됐고, 몇 년에 걸쳐서 일어날 게 압축적으로 진행됐다는 것입니다.

교회로 좁혀서 보면 비대면방식의 테크놀로지(기술), 그것이 삶에 끼치는 영향, 사고방식의 영향, 변화 등 상당부분이 일반화됐고, 코로나가 끝나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비대면 방식 때문에 개 교회 단위의 경계선이 상당히 모호해지는 것이 이미 만연해졌습니다. 교회 나가서 늘 예배드리던 분이 교회 출석을 못하게 되면서 다른 교회 말씀을 TV나 인터넷 방송으로 ‘설교 쇼핑’하게 되는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우려되는 것은 아이티 기술을 중심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 가속화될 것이라는 겁니다. 이건 코로나 이전에 이미 있었습니다. 21세기 세계경제 문제점 중 하나인 신자유주의가 30년 정도 가속 페달을 밟아왔고,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천문학적인 단위로 돈을 벌어들이는 게 가능했습니다. 이로 인해 빈부격차가 아주 극심해졌습니다. 그리고 기후변화도 아주 심각해졌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며 인류가 계속 이렇게는 못 살 거라는 진단이 코로나 이전에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자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교계 생태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중요한 것은 서로 연대하고 더불어 사는 가치를 기독교가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1차적으로는 한국교계 안에서 대형교회와 중형교회가 재정 자립 안 되는 교회들과 연대해 더불어 사는 가치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재정 자립이 안 되는 교회를 껴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하셨는데, 오래 전부터 얘기되고는 있지만 많이 미비한 상황입니다. 어떻게 보면 개척해서 자립되기 전까지, 목회자(가족) 혼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비기독교인들은 ‘기독교 내 목회자들 세계에서조차도 최소한의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서로를 돌봐주지 않는 현상’을 지적하곤 합니다.

- 그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비교적 역사가 오래되고 규모가 있는 교단들은 선교비 지원으로 그 문제를 해소하고 있는데, 이른바 군소교단은 잘 안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전통적인 방법인 선교비 지원이 더 충분히 작동되게 해야 합니다.

‘교계 내부에서의 빈익빈 부익부 문제’는 교회론에 대한 이해와 형태로 접근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것의 하나가 바로 자비량 목회입니다. 한국교회의 바로미터라는 예장통합측의 지난해 통계에 보면 36.8%가 미자립교회라고 합니다. 다른 교단은 아마도 절반 이상이 될 것이구요.

가톨릭과 우리 기독교는 구조가 다릅니다. 단점이라기보다는 다른 것입니다. 각 교단에서 고민하고 있는 목회자의 이중직 문제는 제도적인 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한국교회 내에서 운영해 왔던 선교원 운영이 목회 이중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중직 문제는 교단마다 적절한 방식으로 허용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비량선교의 대표로 사도 바울이 대표적인데, 오늘날 한국교계 안에서도 사회적 직업을 갖고 목회하는 이들이 있는 상황이니 허용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자비량목회의 필요성을 말씀하셨는데, 코로나 시대에 ‘소그룹’ 모임이 활발하고 잘 돼 있는 교회가 타격을 덜 받고 끈끈함이 더해지더라는 통계를 관심 있게 봤습니다.

- 한국교회 안의 소그룹은 오래 됐습니다. 코로나가 끝나도 앞으로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전염병이 이 지구행성에 자주 올 거라는 걸 생각한다면 역동적인 소그룹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런 측면뿐 아니라 교회론의 본질에서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성도의 교제는 사도신경에도 나오는데, 그것의 핵심은 서로간의 인격적인 친밀감을 의미합니다. 오백 명 한 덩어리로 그런 교제는 힘들지만 그 산하에 열댓 명씩 나눠서 한다면 인격적인 교제는 가능합니다.

한국교회 내에서 교회론이나 예배의 본질에 대해서 그동안 많이 강조해왔는데, 많은 변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의 그런 모습을 더 성찰하고 정착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 교회 역시 사회적인 집단으로서의 관성이 있어서 인간의 욕심, 돈이나 권력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욕망, 갈등이 있습니다. 교회도 사회 집단과 마찬가지로 정치나 회사에서 경쟁하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지도자나 성도는 성서를 기본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가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얼마나 건강하냐를 말할 때, 예를 들어 몸이 아팠다가도 기초체력이 괜찮으면 금방 회복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힘든 것처럼, 한국교회는 자정능력이 너무나 약합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대면·비대면 예배를 얘기하는데, 예배 본질은 그게 아닙니다. 조심스러운데, 예수께서 예배의 본질을 말씀하신 요한복음 4장 24절에 보면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여기서 대면, 비대면을 말씀 안 하셨습니다. 이 예배 본질과 짝을 이루는 것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릴 예배의 마땅한 것입니다.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예배 때 만난 하나님의 뜻이 일상의 삶, 이 세상의 삶에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만나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감염 확산 차단 차원에서 비대면으로 하고 피지컬(physical)하게, 즉 신체적인 대면해서는 잠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온라인이나 전화, SNS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 코로나는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성찰의 기회를 주고 있다고 봅니다. 자기를 성찰하면서 예수의 복음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나, 그리스도인으로 합당하게 살고 있나 하는 자기 성찰의 시간이 돼야 합니다.

하나님의 큰 섭리로 보면 코로나는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난 우리를 향해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라는 사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는 카이로스, 기회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에 코로나가 끝나기 전(내년 말 종식 예정)에 한국교회가 복음의 본질에 근거한 갱신의 발동이 걸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개혁, 갱신에 대한 교계 안팎의 요구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좀처럼 나아지는 것 같지 않은데, 목사님이 보시기에 한국교회의 변화, 갱신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 시대가 변화하면 어느 집단이든 그대로일 수는 없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도 떠밀려서 하든지 자의로 하든지 바뀝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외형적인 물량주의, 이기적 기복주의, 고삐 풀린 소유욕 등 3가지를 시급히 극복해야 합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사회여론이나 언론에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코로나 이전부터 비판 강도가 있었는데 지금은 더 심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위기를 느끼면서, 일반사회와 제대로 소통하는 방법도 생각합니다.

사회가 변화할 때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이들이 있고, 수구적으로 강력하게 지금의 것들을 지키려 하는 모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에 있었습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변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한국사회 전체가 느낄 정도로 교회 전반적으로 영적, 제도적으로 한국교회에 커다란 전기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교회 내 상당히 젊은 연령층인 40대(교회가 사회보다 고령화)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그리고 50대 중후반과 60대 목회자 영역에서 굉장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뭔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성찰의 모습이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강화되면서 비대면 예배로 전환해야 하는 정부 방침에 대해 ‘방역수칙을 잘 지키는 교회들까지 비대면 예배나 20명 인원 제한을 통제하는 것은 종교탄압’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 종교탄압이라고 하는 것은 가당치 않습니다. 다만 카페 내에서 전면 금지하는 것을 식당에서는 마실 수도 있게 하는 조치 등을 보면 방역당국의 세심함이 아쉽습니다. 교회도 무조건 20명으로 제한하지 말고, 천명 들어가는 곳이면 조금 더 인원을 준다든지 하면 좋겠습니다. 너무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방역 조치에 대해 탄압, 음모론으로 몰아가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한국사회가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심합니다. 그리고 한국교회 내 이념 갈등으로 그대로 연장됩니다. 이 얘기는 한국교회가 성경말씀에 근거한 자기 고유의 땅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사회나 정치인들이 ‘교회 입장은 무엇이냐,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우리 땅에 와서 요청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한국교회는 무슨 얘기를 하든 보수, 진보로 말합니다. 잃어버린 복음에 근거한 땅을 한국교회는 찾아야 합니다. 또 한국교회는 사회적인 얘기도 필요하겠지만 성서에 깊이 들어가 자기를 성찰하고, 잃어버린 교회 땅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하신 ‘잃어버린 땅’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 우리사회에서 검찰개혁이 사회의제인데, 교회가 거기에 대해 얘기한다면, 교회는 성경 가치관에 근거해서 얘기해야 합니다. 진보는 진보의 가치관으로, 보수는 보수의 가치관으로 거짓되지 않게, 진지하게, 66권 성서에 근거해서 민주주의가 작동되게 하기 위해 어떤 것이 성경적인지를 말해야 합니다.

교회가 상당히 진지하게 논의하는 풍토라면 진보나 보수 정치인들이 이용해먹기 힘들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가톨릭과 비교해볼 때 교회는 정치하는 이들이 쉽게 이용해먹을 대상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이는 교회가 명확하게 자기 가치관(세계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니 한국교회 현 상황이 더 심각해 보입니다. 마치 모래위에 집을 지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런 상태에 수많은 교회들이 있다는 것은 위험한 거 아닙니까.

-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출석신자가 몇 명이냐, 재정이 얼마나 등 한국교회는 외형적인 것에 너무 함몰돼 있습니다. 현재 2.5단계에서 교회당 출석은 몇 만 명 모이던 교회라도 이십 명밖에 못 모입니다.

이런 현상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얼마나 출석신자를 고귀한 인격을 가진 생명으로 봤나, 아니면 한 켠에서는 숫자로 계산했나 하는 걸 되돌아봐야 합니다. 성경의 가치관이 아니라 세속적인 가치관에 얼마나 매몰됐나 하는 것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이천년 교회 역사는 사실 그래왔습니다. 성서의 가치가 절대적인데, 우리는 거기서 얼마만큼이나 멀어졌나 성찰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목사님도 출석신자가 예배당에 가득 차 있다가 몇 명밖에 보이지 않으니 그것 자체로 힘들게 느껴지십니까.

- 당연히 그렇습니다. 목회하는 사람치고 안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요. 코로나 이후에 성도들 중에서 예배 안 드리는 분들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부담을 갖지 않는 목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근본적으로 본다면 출석 숫자, 머리 숫자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예배가 심장입니다. 예배 자리에 나와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안 되면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는 데서 멀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걱정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입니다. 성탄의 기적적인 사건이 주는 의미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 올해처럼 성탄, 즉, 주님의 오심의 ‘사랑과 평화’의 가치가 유별나게 다가온 때는 없는 것 같습니다. 연대하고 더불어 사는 가치가 방향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냐, 길이 뭐냐 할 때 그건 사랑과 평화입니다.

사랑과 평화로서 통전적인 생명(사람뿐 아니라 생명 있는 피조물 모두)을 북돋우는 것이 성탄의 메시지입니다. 이번 성탄절 예배는 2.5단계가 하향되지 않으면 대면 이십 명과 온라인으로 드리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때일수록 크리스마스 노래를 더 온 마음과 영혼으로 노래하며 고대하며 그 가치를 삶의 현장에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있어야겠습니다.

대담=양승록 국장
일시 : 2020년 12월 9일 오전 10시 30분
장소 : 성락성결교회 접견실

출처 : 들소리신문(http://www.deulsoritimes.co.kr)

양승록 기자 koreanpastor8617@gmail.com

<저작권자 ©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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